『변신』을 다시 읽으며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질문에 닿는다.
벌레가 된 그레고르는
정말 인간이 아니게 된 걸까.
아니면,
인간이고 싶다는 욕망만 남은 채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한 존재였을까.

변신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은 것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한 순간
많은 것을 잃는다.
말할 수 없고,
일할 수 없고,
쓸모를 증명할 방법도 사라진다.
하지만 한 가지는 끝까지 남아 있다.
욕망.
그는 여전히
- 그림을 지키려 하고
- 음악에 이끌리고
- 가족을 이해하려 하며
- 여동생과 다시 연결되길 바란다
이건 생존 본능이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한 욕망도 아니다.
인간적인 욕망이다.
그림에 대한 집착, 인간이었음을 붙잡는 행위

그림은
그레고르의 방에 남아 있던
유일하게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돈도 되지 않고
가족에게도 필요 없는 물건.
그래서 가족은
방을 정리하며
그 그림부터 치우려 한다.
그 순간,
그레고르는 처음으로
분명한 저항을 보인다.
벽에 몸을 붙여
그림을 가리듯 보호하는 장면.
이건 예술에 대한 애착이 아니다.
“이것마저 사라지면
나는 완전히 사라진다”
그림은
그가 사람이었음을 증명하는 마지막 흔적이다.
바이올린 소리, 아직 인간이고 싶다는 욕망
그림이 과거의 인간성이라면
바이올린은 현재의 감각이다.
그레고르는 음악을 듣고
방 밖으로 나온다.
이 장면은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는
- 다시 인간과 연결되길 시도하고
- 여동생과의 관계를 꿈꾸고
- 자신이 아직 느끼는 존재임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이해가 아니라 혐오와 공포다.
그 순간 그는 깨닫는다.
느낄 수 있다고 해서
인간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욕망이 있었기에, 더 비극적이다
만약 그가
-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 그냥 벌레처럼 살았다면
이 이야기는 덜 잔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카프카는 그렇게 쓰지 않았다.
그레고르는 끝까지
- 가족을 배려하고
- 짐이 되지 않으려 하고
- 스스로 물러난다
이건 본능이 아니다.
윤리와 배려다.
즉, 그는 마지막까지
인간적인 방식으로 욕망하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포기한다.
인간이었다 vs 인간이고 싶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인간이었다”는 과거가 아니다.
중요한 건
“인간이고 싶었다”는 현재형의 욕망이다.
그레고르는
-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 욕망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 이상 인간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그래서 『변신』은 이런 질문을 남긴다
인간은 언제부터
욕망을 가질 권리를
쓸모로 증명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역할이 사라지면
욕망도 함께 사라져야 하는 걸까
마무리하며
『변신』은
사람이 벌레로 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소설은
욕망을 가진 존재가
더 이상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은퇴를 고민하는 시기,
역할이 줄어드는 시기,
인생설계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순간에
유난히 깊게 들어온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그레고르처럼 묻게 된다.
“쓸모가 사라진 뒤에도
나는 인간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카프카는 끝내 주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보여줄 뿐이다.
욕망은 끝까지 남아 있었다는 것을.
다음이야기
②은퇴 이후에도 우리는 욕망할 수 있을까 『변신』이 남긴 인생설계의 질문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세일즈맨의 죽음』이 지금 우리에게 더 아픈 이유 — 은퇴·성공·존재감을 다시 묻는 고전 (2) | 2026.01.31 |
|---|---|
| ①『주홍글씨』억압된 사회에서 욕망은 어떻게 사람을 무너뜨리고, 또 살리는가 (0) | 2026.01.31 |
| ②『주홍글씨』 × 『변신』욕망은 어떻게 사람을 살리고, 어떻게 사람을 벌레로 만드는가 (0) | 2026.01.31 |
| ②은퇴 이후에도 우리는 욕망할 수 있을까 『변신』이 남긴 인생설계의 질문 (0) | 2026.01.29 |
| ③은퇴 후 욕망의 변신– 카프카 『변신』이 알려주는 인생설계 루틴 (0) | 2026.01.29 |